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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저는 자동차 안에서 잤었는데, 일어나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어요.
자동차를 몰고 온 어느 남자선배는 다음 날 몇 시에 올 거라고 말씀하시고 가셨습니다.
올라가서 보니까 민박이라기 보다는 산 중간 오두막집? 주인댁 다 저기 들어가는 곳 아래에 있었고요.
딱 남 눈치 안 보고 시끄럽게 놀아도 될만할 정도로 십몇 분을 올라가면 있는 곳이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요,
그게 거의 다른 학교 동아리들 노는데 거기 아는 언니가 절 초대해주셔서 함께 간 거거든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술은 잘 못해도 뭐 수박화채 해 먹고, 수다도 떨고 진짜 건전하게 노는 모임이었는데,
엠티가 그렇듯이 저희들도 밤새도록 게임하고 수다를 떨고 놀았습니다.
정말 즐겁게요. (1박 2일로 밤새는 엠티였어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절 초대해 준 언니가 제게 다가와 잠시 바깥으로 나가서 뭐 좀 사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전 길이 워낙 험난하고, 시간도 새벽이다보니 만류하고 남자분께 부탁해보라고 말했고요,
언니는 알았다고 하고 화장실으로 들어가려다가 황급히 나왔어요.
"왜그래, 언니?"
저는 이렇게 물었어요. 화장실의 참혹한 실상을 잘 몰라서..
"욱, 김치 부침개 범벅이야..."
그래서 저도 보니까 정말 제대로 토사물 범벅이었어요.
언니는 도무지 찜찜해서 못 앉아 있겠다고, 바깥에 보니 간이 화장실도 있고 해서
누구와 함께 가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언니는 화장실 바깥으로 나갔어요.
저는 그 때 일단 샤워기로 다 씻는 중이다보니, 조금 시간이 걸렸어요.
나와서 보니까 사람들 중 1/3은 쓰러져 있었는데, 언니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무리 중 한 사람이 없어서 (엠티 때 알게 된 남자애였어요. 동갑내기)
함께 화장실 갔나? 하고 잠시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갔어요.
보니까 그 남자애가 밖에서 전화를 하고 있던 거예요.
저는 놀라서 그 남자애에게 언니가 어디 있느냐고 마구 흔들어 물었어요.
솔직히 요새 세상 정말 위험하고 산자락에 무슨 살인범이나 강간마가 숨어드는 것은 예삿 일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남자애와 황급히 산자락을 내려가면서 간이 화장실으로 갔습니다.
간이 화장실은 그냥 한 사람이 들어가는 모양이 아니라, 알고보니 제대로 세워진(?) 재래식 화장실이었어요.
하도 간이 간이, 푸세식 푸세식 이래서 전 그랬으려니 했었는데 의외였지만 말이에요.
화장실은 뭐 그 칸이 일곱 개 정도 되어 있었고 일렬으로 정렬되어 있었어요.
바깥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식이었구요.
불이 하나도 켜져있질 않아서 저는 남자애와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가까이 가서 문을 하나하나 열었습니다.
그 남자애가 그나마 손전등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는지.. 안을 비추어 볼 수 있었어요.
칸 속에는 휴지랑 뻥 뚫린 네모난 구멍이 있었고요.
안 봐도 그 안에 오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첫 칸도 없고 둘째 칸도 없었어요.
저희들은 설마 이러면서 마지막 칸도 열어봤는데 없었고요, 모든 칸에 없는 거예요.
남자 화장실 쪽에 가서도 봤는데 없었어요.
그제서야 남자애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안의 구멍에 손전등을 비추어 봤어요.
저는 밖에서 초조해하면서 손톱을 깨물고 있었고요.
그런데 별안간 남자애가 어느 칸에 들어가더니 " 악! " 하는 소리를 내며 황급히 물러서는데,
저도 덩달아 놀라서 소리를 질렀어요.
" 왜 그래? "
하고 묻었는데 정말 놀란 얼굴로,
" 아니 거기 흰 얼굴이 하나 있었어. "
라고 대답을 해서 진짜 저도 몸이 굳고, 정말 놀랐어요..
" XX언니 화장실에 빠진 거 아냐? "
남자애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화장실에 점점 멀어지는데, 저도 무서웠지만 우선 언니가 진짜 걱정되었거든요..
" .....내가 들어가서 볼께. 손전등 줘... "
" 아냐, 내가 볼게.... 빠졌나... 다시 볼게.... "
이러고 다시 칸으로 들어갔는데 남자애도 겁을 먹었던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진짜 많이 떨려가지고 그 곳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남자애는, 빠졌나...빠졌나... 이러며 손전등으로 다시 비추어봤는데
곧, 의아한 목소리로 " 없어.. " 라고 말했어요.
저는 술에 취해서 무언가를 잘못 보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남자애도 저처럼 술을 전혀 입에 안 대고 사이다 수박화채만 먹었대요.
그리곤 " 놀랐지? 사실 장난이었어. " 라고 갑작스럽게 제게 말하는데 전혀 안 믿겼습니다.
아까 놀란 거랑 떨었던 게 진짜같았거든요.
제가 직접 마지막 칸까지 다 봤는데 정말 언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애가 혼자서 산 뛰면서 찾아보겠다고 저를 다시 오두막집으로 데려다 줬어요.
한 시간 사십 분 정도가 지나 남자애가 돌아왔는데, 혼자더라구요.
쉬지 않고 계속 찾아다녔는데도 없었다고..
그런데 몇 시간 후 새벽에 언니가 울면서 어떤 할아버지와 함께 온 겁니다.
그래서 제가 놀라면서 어디로 갔었느냐고 묻자, 산을 헤맸다고..
" 진짜 일이 급해서, 당장에라도 오줌 쌀 것 같아서 황급히 화장실로 갔거든,
밖에 OO이가 전화하고 있어서 아무 데나 가서 오줌도 못 싸겠고 그래서 말이야.
무엇보다 화장실에 화장지가 있고
(화장지는 누가 맥주를 쏟는 바람에.. 집 안 화장실에 가려면 일 다 보고 물로 씻어야 할 판이었음.)
그래서 뛰어갔다가 일 다 치루고 보니까 이상하게 한기가 드는 거야. "
하는데 그 남자애가 " 혹시 흰 얼굴 같은 거 못 봤나요 누나? " 하니,
" 어, 흰 얼굴 같은 거... 너도 봤어? "
제가 그 때 오싹해서 남자애를 보니까,
" 그 때 너 진짜 무서워해서 거짓말이라고 했어, 근데 눈치가 빠른지 안 믿더라... "
하고 우물거리는 거예요.
이윽고 언니가 자신이 밤에 겪었던 이야길 했는데 그걸 듣고 남자애도 저도 얼굴이 정말 하얗게 질렸습니다.
" 보니까 내 아래에 흰 얼굴이 날 보고 있더라.
어린 소년처럼 생겼는데, 진짜 섬뜩하게 생겨서 놀라서 바지도 제대로 못 추스르고 밖으로 도망갔어.
진짜 눈물이 왈칵 날 정도로 놀랐어.
근데 아무 생각없이 멀리 도망가다 보니까 길을 잃은 것 같았어.
산이 거기서 거기잖아. 나무 있고 끝.
그래서 난 불빛을 찾아서 돌아다녔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돌아가도 화장실도 없고 불빛도 없고 우리 오두막도 없고....
진짜 쉬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결국 주저앉았거든.
편편하고 큰 바위가 있어서 그 위로 올라 앉았는데 무엇을 끄는 소리가 들렸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나는 반가워서 그 소리 들리는 곳으로 갔는데 이상한 감이 스친 거야.
왜 그 오싹한 감 있잖아. 요새 사람이 더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난 바위 아래로 누워 숨었는데 얼핏 보니까 진짜 산지기 할아버지도, 수위 아저씨도 아니고
전혀 모르는 사람? 발만 봐서 잘 모르겠는데 그 사람이 무슨 거적으로 짠 포대기를 끌었어.
보니까 그 위에..... 시체가 있었어. 그 사람은 대체 뭐지? 하고 봤는데,
남잔데, 옷도 요즘 사람의 것이라곤 보이지도 않았어, 진짜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조심스럽게 보니깐 정말 흰 얼굴에 아무것도 없는 데도 계속 앞만 바라보고... 손으론 거적떼기를 끄는데....
피범벅이 된 아기시체가 그 위에 있는 거야...
진짜 소리 안내면서 우느라 죽을 뻔 했어.. "
여기서 언니는 진짜 놀라서 계속 숨어있었대요.
"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정말 무서워서, 얼핏 머리 내고 이리저리 보니 아무도 없는 산속이고, 어두웠어.
그래서 난 황급히 아래로 도망갔어.
그 사람이 갔던 반대방향으로 말이야. 근데 앞에서 무슨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난 또 놀라서 주변에 있던 덤불 뒤로 숨었는데 무슨 어린아이 셋이 뛰어 올라갔어, 마구 웃으면서.
솔직히 난 그 웃음소리에 위화감이 들었거든.
밤에 으슥한 산에서 불빛도 없이 어린애들이 웃으면서 돌아다녀?
아니 시골에 어린애가 있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지 않아? 노인들만 있는 이 곳에?
걔네들 간 지 한참되고 난 후에 정말 앞뒤없이 그냥 울면서 뛰어갔어.
멀리서 불빛이 있었거든. 보니까 사람인 거야.
손전등을 들고 무슨 츄리닝 입고 돌아다니는 할아버지인 거야..
난 울면서 그 쪽으로 가려는데 길이 엇갈려 있었고, 그 쪽으로 가려면 계곡을 건너야 해.
근데 보니 조금 깊고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가까이 가질 못하고.. 그래서 소리를 쳤거든.
도와주세요! 아저씨! 도와주세요! 라고.
그리고 소릴 들었는지 할아버지가 날 봤는데,
아무것도 못 본 듯이 바로 스윽하고 다른 곳으로 갔어.
난 열심히 손을 흔들면서 그 할아버지 동선을 따라가며 도와달라고 했는데도 계속..
근데 그 할아버지는 나를 끝끝내 무시하는 거야.
나 진짜 울면서 어거지로 계곡을 뛰어넘고 다시 올라갔는데 물이 너무 차갑고 물살도 세고,
그래도 귀신들 본 거 진짜 무서워서, 사람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올라갔어..
겨우겨우 맞은편으로 올라가서 그 할아버지가 간 곳으로 따라갔어.
보니까 날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더라.
어슴푸레하게 길이 보이니까 진짜 열심히 그 할아버지 따라가서,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
할아버지가 진짜 놀라면서 내게 말했어.
그게 나 너무 소름끼쳐서 진짜 울 뻔 했다.."
"그 할아버지가 대체 뭐랬어?"
" '처자, 귀신이 아니었어? 아까 본 게 헛 것이 아니었나?' 라고 말씀하셨어. "
그리고 같이 오신 그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 여기는 원래 귀신들하고 헛것들이 많이 나와. " 하시면서,
" 산 속에서 무언가를 만날 때는 그냥 헛것이려니 하고 못 본 척 넘어가는 게 좋아.
이 산을 몇십 년을 돌아다녔는데....
살려달라고 내 발 아래서 엎드리는 귀신도 있었고, 소리를 지르면서 내게 다가오는 귀신도 있었어.
아까 이 처자처럼 맞은 편 강가에서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고 비는 거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다보니 그러려니 했는데 말여.. "
언니를 귀신으로 착각하시고 그냥 무시하셨던 거예요, 할아버지는.
그리고 할아버지는 얘기 하나를 들려주셨는데,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잘 기억나지도 않고 하지만,
옛날에 대량학살이 있었고 그 학살에서 도망친 몇몇 사람이 결국 잡혀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끝내 그들도 참혹하게 학살을 당했고, 그래서 그 곳은 한이 깊게 남아있는 땅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무도 그 등지에선 아무도 살지 않고,
심지어 오두막집 주인분도 산에서 살질 않고 저 아래 민가에서 사실 정도라고.
귀신이나 요망한 것들 자주 나와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했지만,
워낙 땅에 깊게 남아있는 원한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나가고 사라지고 해서 여기에는 이제 늙은 노인들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이 날 이후 그 언니는 엠티를 갈 때 절대 인적이 드문 산이나 폐교 같은 곳엔 가지 않고, 사람이 많은 데로만 가고 있고요..
그 남자애가 봤다는 하얀 얼굴도 그렇고,
저 역시 산에 있는 어떤 오두막집으로 엠티 일정이 잡히면 절대 참여하지 않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