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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머니는 20살에 시집을 오셨는데 할아버지는 그 때 18살이셨대.
그런데 할아버지는 친할머니에게 별로 정이 없으셨나봐.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셨는데, 키도 훤칠하시고 외모도 호남형이어서 인기가 장난 아니셨대.
귀국한 후에 일본 기생이 한국까지 찾아왔었다고 하니까.
일본 유학 중에 한국에 몇 번 들어왔을 때 우리 아버지를 낳으셨는데,
몇 년 뒤에 아주 귀국한 뒤에도 할머니랑 데면데면하게 지내셨대.
그런데 어느 날 작은 할머니를 데리고 오신거야.
그때 우리 아부지는 6살인가 7살인가 그랬대.
그리고 세 분이서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하셨는데,
우리 할머니 쪽으로는 아부지 밖에 없었고 작은 할머니에게서 딸을 셋 얻으셨지.
우리 할머니는 워낙 성격이 조용하시고 소심한 편이셨는데 작은 할머니는 성격도 좋고 애교가 장난 아니셔.
그래서 세 분이 같은 집에 살면서도 별 문제가 없었대.
무엇보다, 당시 시골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기에 그냥 팔자려니... 하고 사셨던 거 같애.
지루해? 미안해. 배경 얘기를 알아야 해서.. 좀 더 해야 해... 자, 여기 인내인내 열매 좀 드셔.
큰할머니는 일흔을 조금 넘겨서 돌아가셨어.
중풍이 와서 쓰러지셨는데 한 2년 정도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거든?
그 수발을 작은 할머니가 다 드셨지.
돌아가실 때도 작은할머니 손을 꼬옥 잡고 돌아가셨어.
나는 할머니 임종을 못했는데, 나중에 시골에 내려가니까 작은 할머니가 얼마나 우셨던지 완전 탈진해 계시더라고.
줄초상 치를까봐 걱정 될 정도로.
우리 시골에는 조상들 묘를 모시는 선산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젊을 적에 지관을 불러서 묘자리를 봐 두셨었어.
그리고 세 분이 나란히 묻히시겠다며 봉분 세 개를 가묘를 해 두셨었어.
가묘가 뭐냐면, 나중에 거기 묻히겠다고, 미리 묘를 만들어두는 거야.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처럼 본부인, 작은 부인이 있는 경우는
왼쪽부터 /남편/본부인/작은부인/ 이렇게 묘를 써야 하는 거래.
지관도 그렇게 잡아줬었고.
그런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묘를 맨 왼쪽에 쓰겠다고 하신거야.
당신께서 중간에 들어가겠다고.
그런 법도는 없다고 집안에서 난리가 났었어.
우리가 좀 희귀 성씨라 친척들이 많지는 않은데 가문, 전통 머 이런 거를 까다롭게 따지는 편이라 저 때 엄청 말이 많았어.
그럼 차라리 합장을 하면 어떠냐고 당시 꼬꼬마였던 내가 말했지만 어르신들은 들은 척도 안 하셨어.
사실, 할아버지는 그러고 싶으셨는데 문중 어른들이 그건 정말 절대 안 된다고 했었대.
그게... 음... 작은 부인하고 합장을 할 수는 없다는 거야...
할아버지가 중간에 들어가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알겠어??
할아버지는... 작은 할머니 옆에 묻히고 싶으셨던 거야...
우리 할아버지는, 엄청 무뚝뚝한 분이셨거든?
하루에 말 한 두마디 하면 잘하시는 거고. 같은 말도 야단치듯이 하시고.
화나면 소리도 엄청 크게 지르셔서 문 창호지가 막 징징 울릴 정도였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댓돌 밑에 짱돌 정도로 생각하셨던 분인데, 작은 할머니에게 그렇게 애틋한 줄은 정말 처음 알았어.
장례 치르는 동안 막 문중회의 같은 거 열리고 막 그랬는데, 결국 할아버지 뜻대로 하기로 했지.
우리 할아버지가 문중에서 제일 높은 분이셨거든.
큰할머니 소생으로는 우리 아부지 밖에 없다고 했잖아?
그래서 문중 어른들이 우리 아부지가 서운해 할까봐 마음 쓰이셨나봐.
나중에 한 분이 우리 아부지를 따로 부르더니
“서운해 하지 마라. 원래 그 자리가 네 아버지 몫으로 봐 둔 데라서 이 산의 주인 자리다.”
하시더래.
이상한 건 우리 선산은 붉은 황토 산이거든?
그런데 할머니 묘를 파는데 조금 파니까 노란 흙이 나오는 거야.
황금토라고 하더라고.
그거 보면서 집안 어르신들이
“형님, 이래도 여기에 형수님 모실 겁니까?”
라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묵묵 부답이셨어.
우리 할아부지, 한다면 하는 남자.
그리고, 몇 년 뒤에 우리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소원대로 가운데 묻히셨지.
우리는 할아버지 묘에도 노란 흙이 나올까? 하고 지켜봤지만 그냥 붉은 흙만 나오더라고.
몇 년 뒤에는 작은 할머니도 돌아가셨어.
원래라면.. 제일 오른 쪽에, 할아버지 옆에 모셔야 하잖아.
그런데... 작은 할머니 발인 전날, 뜨둥~!
일이 터진 거야!
작은 할머니는 막내 고모네 집에 놀러가셨다가 저녁밥 맛있게 드시고 손주들 재롱 보며 잠이 드셨는데
아침에 보니 자는 듯이 돌아가셨대.
흔히 말하는 가장 복 받은 죽음이셨지.
연세도 많으시고, 특별히 아픈 데도 없으셨기에 다들 호상이라고 칭송이 자자했지.
그러나... 집 밖에서 돌아가셨기에.............
집에서 장례를 못 치루고 시내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러야 했어.법도가 그렇대. 법도.
누가 들으면 엄청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인 줄 알겠넼ㅋㅋㅋ
그냥 친척 몇 명 없는 희귀 성씨라 쫌 연세있는 어른이 ‘법도다’ 하면 그런 줄 알고 따라가고 그럴 뿐이야. 솔직히.
....우리 큰 오빠가 이 글 보면 안 되는데. 지금은 그 냥반이 대종손.ㅋㅋㅋㅋ
할아버지와 큰할머니는 집에서 돌아가셔서 장례를 집에서 치뤘어.
마당에 엄청 큰 솥을 걸어놓고 육개장을 끓였는데, 단언컨대 가장 맛있는 육개장은 장례식의 육개장이야.
(할아버지 할머니 장례식 때도 나름 신비로운 일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얘기할게. 내가 까먹으면 누가 말해줘~~)
솔직히... 장례식장이 편하긴 하지만 평생 살아온 집이 아니라 밖에서 모시자니 자손들 마음은 찜찜하지.
그냥 간소하게 삼일장을 치루기로 했어.
그런데 첫날밤에 막내 오빠가 아부지한테 싸닥션을 맞았어!!
왜냐면 막내 오빠가 아부지한테
“아버지, 작은 할머니... 선산에 안 모시고 화장 시켜드리는 게 어떨까요?”
라고 했더니
아부지, “뭐라(철썩!)고!”
울 아부지, 오빠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손부터 나가신 거야
울 아부지가 자식들에게 손 대신 건 저 때가 펴~~~엉생 처음이자 마지막.
막내 오빠의 혼은 안드로메다까지 날라갔고 어무니랑 고모들이랑 울고불고
나는 육개장 나르다 말고 뭔 일인가 뛰어가다가 엎어지고 네 살짜리 조카도 울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지.
아부지는 노여움에 머리털 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르셨어.
뭐 그렇게까지 화를 내실 건 없지 않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는 큰할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작은 할머니에게 더욱 알뜰살뜰 하셨었거든.
혹 친어머니 아니라서 소홀해졌다고 느끼지 않으시게.
그런데 돌아가실 때 임종도 못한데다 집에서 못 모시고 장례식장에서 모시게 되어서 너무 속상하셨던 거 같아.
법도가 뭐길래.
일단 집안 어른들과 큰오빠가 아부지를 진정시키고 엄마와 고모들, 우리는 막내오빠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와서
니가 미친 거냐, 무슨 정신이냐 윽박지르기 시작했는데 막내오빠의 말이 뜻밖이었어.
“엄마, 큰고모, 둘째고모, 막내고모, 동생아.
그거 내 생각이 아니야.
무당 스님이, 아까 전화가 와서 신신당부한거란 말야.
작은 할머니, 선산에 들어가시면 다 난리난대. 끅끅 (이때쯤부터 울기 시작)
할머니도 안 가고 흐극 싶어하신대 흐극흐극
나도 흐끅 망설이고 망설이다 끅끅 얘기 꺼낸건데 끅
아부지는 왜 말도 안 들어보고.. 엉엉어어엉어흐으윽끅끅엉엉”
우리는 일순 굳었어
잠깐!
엽호판님들, 무당 스님에 대해 설명듣고 가실게여!
그 때 막내오빠는 모 신문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몇 달 전에, 취재 관계로 한 비구니 스님을 알게 되었다면서
싱기방기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었거든.
막내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기는거 미리 말해줘서 피하게 해주고.
나한테 무슨무슨 일 있을 거란거 딱딱 맞추고. 전생도 얘기해주고.
뭐 신비로운 일화가 많아.
차차 풀겠지만 하나만 얘기하자면, 스님이 우리 막내 오빠를 첨에 딱 보더니
‘동생 덕에 우리가 만났구려’ 하시드래.
그 몇 달 전에 오빠가 기획기사 거리를 찾고 있다길래 마침 내가 잡지를 보고 있다가
‘오빠, 이거 재밌네’ 하고 기사 하나를 쭉 찢어서 오빨 줬어.
그게 그 스님 얘기였거든?
그 스님이 일화가 쫌 신비로운 게 많드라고.
근데 그 기획 기사가 킬 되는 바람에 오빠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몇 달 뒤에 갑자기 급하게 원고를 써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수첩을 뒤적이다가 그 기사를 발견한거지
그때는 이미 내가 기사를 찾아준 것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기가 스크랩 해놓은 거겠지 했는데
그 스님이 오빠를 딱 보자마자 그 얘기를 하니까 그제서야 생각이 나드래. 아 맞다. 이거 동생이 준 기사였지.
..... 쫌 약해?? 그럼 이건 어때?
그때 우리 오빠가 어어어어엄청 이쁜 스튜어디스 언니를 1년 동안 쫓아다녀서 겨우 여자친구님으로 모셨는데,
넘어온 김에 굳히기 하겠다며 매일매일 결혼신청을 하고 있었거든ㅋㅋㅋㅋ
근데 그 스님이 그 아가씨랑 끝까지 가면 안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그러드래.
막내오빠는 전생에 기생이었고, 그 아가씨는 기생(우리 오빠)이 키우던 고양이였는데
그 기생이 남자한테 빠져서 고양이를 버리고 다른 데로 가버리는 바람에 고양이가 엄청 외로워하다가 죽었대.
그래서 그 한이 남아서 이번 생에 널 만난거라고.
그런데 너희 둘은 만나면 그렇게 슬프게 헤어지는 것을 매 생애마다 반복하고 있다고.
이미 스튜어디스 여친님의 노예가 되어 있던 우리 오빠가 어머흥칫핏 콧방구를 뀌니까 스님이 딱 그러드래.
“고양이 코에 점 있다.”
꺄~~~~~앜ㅋㅋㅋㅋㅋ맞아. 그 언니 코에 엄청 이쁜 애교점이 있었어.
우리 오빠 완전 다운.
그날부터 무당스님교의 신도가 되었지.
알고 보니, 그 스님이 속세에서 엄청 용한 무당이셨대.
스님들 중에는 원래 무당이셨던 분들이 꽤 있다며?
그런 스님을 무당 스님이라고 한대.
사실 어떤 경우는 무당하다가 그냥 신빨이 떨어져서 스님으로 변신해서
신도들에게 부처님 가피 받으려면 제사 지내라고 하면서 제사를 빙자한 굿을 하면서 막막 돈도 긁어내고 그런 사람도 있다는데
이 스님은 출가한 후에는 점도 안보고 굿도 안하셨대.
그런데 우리 막내 오빠를 이쁘게 보셨는지, 이런저런 거 가르쳐주고 액땜도 해주고 10원받고 부적도 써주시고 막 그랬었거든.
우리 식구들은 다 교회 다녔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무시하지는 않는
그런 조금은 가벼운 신도들이었기엨ㅋㅋㅋㅋ 막내 오빠가 스님에게 부적 받아오면 좋아라 받아서 챙기곤 했지.
우린 이미 무당스님의 노예
그런데, 그런 스님이 한 당부라니 모른척 넘기기엔 좀 찝찌름 하잖아.
게다가 오빠가 눈물콧물 짜면서 얘기하는 바람에 잘 못 알아듣긴 했는데 오빠는 내려오면서 그 스님에게는 말도 안하고 왔었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 라서.
우린 아무도 준비 못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 스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하신거야.
물론 회사에는 얘기하고 월차를 받고 온거라서 신문사에서 들으셨어요? 하니
그게 아니라 작은 할머니가 다녀가셨다고 그러드래.
자기 좀 선산에 안 들어가게 해달라고.
고모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엄마도 침........................묵.................
막내 오빠는 여전히 흐끅흐끅 흐느끼고.
스물 서너살에 부모님에게 생전 첨 맞았다고 생각해 봐.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나도 저 때는 충격이 너무 커서 계속 막내 오빠 눈물을 닦아주며 같이 울고ㅋ아놬ㅋ
그런데 그 때, 무당 스님에게 전화가 왔어.
오빠는 흐끅흐끅 흐느끼며 스님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안 되겠다고, 아버지가 엄청 단호하시다고,
생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고 끊었어.
엄마는 내가 아버지랑 얘기해보겠다고 아버지 쪽으로 건너가셨는데,
‘저 놈의 자식, 저거 저놈의 자식’ 하는 고함 소리만 쩌렁쩌렁 들려올 뿐
오빠는 한없이 구석으로 찌그러들고.
그리고 집안 어르신들도 아무리 계실(작은 부인이라는 뜻이야 나도 저때 첨 들음) 이라고 해도
선산에 모셔야지, 법도가 아니라고 하셔서 막내오빠 싸다구 사건은 일단락 되었어.
그리고 다음날은 손님이 어어엄청 많이 오셔서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날 밤에... 스님이... 세상에...거길 오신거야.
막내 오빠가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작은할머니 영가에게 길을 물어서 오셨대.
아오.
장례식장 입구에 뜨든~! 나타난 무당스님.
우리 가족은 무당스님의 숨은 노예였지만 실제로 뵌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
나이는 40대 초반.
수수한 승복 차림에, 평범한 여승이셨어.
그런데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너무너무 동그랗고 예뻐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더라.
삭발머리가 그렇게 예쁜 사람은 홍석천 이후 처음이야.
사실은 아제아제바라아제의 강수연 이후 처음이야. 라고 썼다가 고쳤어.
나이 어리신 엽호판러님들은 누구? 뭐? 하실 게 뻔해서 사모하는 레떼님은 알아들으시겠지만ㅋ(네네. 이제 고만. 사심 판질)
스님은 먼저 할머니 영정에 향을 하나 올리고 잠시 기도를 하시다가 울 아부지와 인사를 하셨어.
아부지는 담담하게 인사를 받으셨지만 실은 노여워하고 계셨다는 거 나 알아.
왜냐면 난 아버지의 가장 귀여운 막내딸이라서 아부지 맘 속에 쏙 들어갔다 온 것처럼 안 것은 물론 아니고,
문상객이 영정에 절할 때 상주가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해야 하는데,
이제껏 잘하시던 아부지가 안하시고 스님을 째려보고 계셨었거든.
스님은 다 알고 왔다며 괜찮다며 아버지 손을 잡고 토닥토닥해주셨어.
그러자.. 호랑이처럼 뛰쳐오르기 직전이었던 아버지의 기가 거짓말처럼 스르르르르... 가라앉았어.
일단 벌겋게 달아올랐던 얼굴색이 돌아오셨으니까.
그리고 스님은 아버지와 엄마, 고모들, 고모부들, 큰오빠와 막내오빠, 나.. 이렇게 직계 가족들만 잠깐 따로 보자고 하셨어.
장례식장 안 쪽에 가족들 쉬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그 방으로 다 모였지.
올케언니는 4살 조카가 흐물흐물 잠이 들려고 하던 참이라 낄 수 없었지.
나중에 그러는데 궁금해서 미추어버리는 줄 알았댘ㅋㅋㅋㅋ
좁은 방에 우리 가족이 주춤주춤 자리를 잡고 앉자 스님이 이야기를 시작했어.
주로 아버지를 상대로 얘기하셨고 우린 듣기만 했지만
뭐,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다고나.
일단, 5~6년 전에 돌아가셨던 큰할머니는 문중 선산의 산신이 되셨대. 헉쓰.
그 얌전하고 조용하신 우리 할머니가??
그 이유는, 그치. 지금 막 무릎쳤지?? 맞아.
할머니 묘자리가 선산의 주인 자리였쟈나.
원래는 대종손인 할아버지 자리였던 거기 말야.
붉은 적토산에서 노란 황금토가 나오고, 앞은 지평선가지 탁 트이고 뒤로는 졸졸 샘물이 흐르며 왼쪽으로는 청룡의 기상이,
오른쪽으로는 백호가 으르렁ㅋㅋㅋㅋ미안ㅋㅋㅋㅋ 왕손이 나실 기셐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문중의 선산이라는 게, 좀 그렇대.
산이 그다지 크고 깊진 않아도, 조상들의 영가가 모인 곳이라 산의 기운이 크대.
그런 산의 주인이 되신 거야. 울 할머니가.
그런데 문제는 우리 할아버지.
명당에서 1미터도 안되게 떨어진 자리니 거기도 사실 준 명당인데,
할머니가 산의 주인이 되신 이상 명당이고 뭐고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래.
그래서... 할아버지는 거기 못 계시고...
산 아래 쪽에서 문지기를... 하고 계신대...
왜냐면... 큰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노여움이 크셨었대...
이유는 뭐... 그런거지. 뭐.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남편이라고 몇 년에 한 번씩 손님처럼 왔다갔다 하다가
이제 조국도 해방되고, 금쪽같은 아들이랑 남편이랑 오순도순 살아보겠구나~! 얏호 했는데
어디서 꽃 같은 둘째 부인을 데려왔으니 아무리 순둥이 같은 여자라도 속에서 열불이 안 났겠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워낙 마초마초시다 보니 그런 내색을 감히 내보일 수도 없었고,
게다가 둘째 부인은 야들야들 애교가 넘치고 형님 형님~ 우리 형님 이래가며 부비부비하니 미운데 미워할 수도 없고,
긴긴 겨울밤이면 창호지 문살에 비친 두 사람 그림자를 바라보며 어린 아들을 도닥도닥 재웠고
아침이면 그 방에서 나온 요강도 비워주고, 밤새 지저분해진(응?) 이불호청도 뜯어 빨아주고 그랬대.
어흐흐흑.
그런데 스님은 이런 이야기를 마치 자기 얘기처럼 술술술술 늘어놓는거야.
우리는 조금은 기가 막혔고. 조금은 슬펐고. 조금은 아버지 눈치가 보였는데
막상 아버지는 얼굴이 각시탈처럼 돼서 아 네. 그렇군요. 네. 저런. 같은 영혼없는 리액션만 하고 계셨지.
여차하면 일어나서 나갈 기세. ㅋㅋㅋㅋ
아. 요강 부분에서는 좀 움찔. 하셨어.
나중에 말씀해 주셨는데 어릴 적에 큰할머니가 작은 할머니 방에서 나온 사기요강을 들고 가서 비우는 걸 보신 적이 있었대.
어린 나이였지만, 왠지 분하고 화가 나서 아무도 몰래 사기 요강을 발로 뻥~! 차서 깨뜨렸대.
그리고 시침 뚝. 고양이가 그랬나? 하고. 이런 귀요밐ㅋㅋㅋㅋ
그런데 큰할머니가 다음 번 장에 가서 이번엔 스뎅으로 된 요강을 사오셨다곸ㅋ나 그 스뎅 요강 알앜ㅋ
나 어릴 적에 시골 가면 밤에 무서워서 변소 못가고 할머니가 요강 꺼내주셨거든.
그 요강이 그 요강이었어. 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니. 매일밤 깔고 앉은 게 미안해졌어.
스님 얘기를 들으며 내 넋은 둥실둥실 안드로메다로 떠나고 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어.
“... 하여 작은 어머니를 선산에 모시면, 이 집 남자들에게 큰 해가 옵니다.
3년 안에 사위들 다 쓰러지시고, 장주 분도 목숨은 건지겠지만 무사하진 못하십니다.”
헉, 나 주먹 나갈 뻔했쟈나.
옆에서 우리 큰 오빠도 부르르 떨드라.
막내오빠는 전화로 얘기를 들었었나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와 진심 때려주고 싶더라.
엄마랑 고모들은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각시탈도 하얗게 변했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지금은 큰 어머니가 그래도 정신이 있어서 자손들을 돌보시지만,
여기서 더 화를 돋구면 악귀가 되실 겁니다.그러면..”
와라락!
아부지가 스님의 멱살을 잡았어.
“너..너.. 이...미..”
차마 욕은 못하셨지만 아부지는 정말 눈이 빨개지셨어.
우리는 쫘악~! 아버지에게 달라붙어서 스님을 떼어냈어.
길게 썼지만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야. 한 2~3초?? 콱! 척! 착! 같은 느낌?
그때 엄마가 울부짖었어.
“00 아부지! 자꾸 그러지만 말고 얘기 좀 들어봐요!
서방님들이 잘못된 대잖아!
지금 스님 말이 틀린 게 없잖아! 왜 이래요!”
고모들도 엉엉 울부짖기 시작하셨어. 초상집이었기 망정이지 아오.
아부지는 다시 철푸덕 앉으셨어. 그리고 스님에게 고함을 치셨어.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전 작은 어머니를 꼭 선산에 모실 겁니다.
작은 어머니는 그럴 자격이 있어요!”
스님도 마주 소리질렀어. 배틀!
“그걸 작은 어머님이 원하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여기 계세요. 울고 계시다고요!
아들 다칠까봐! 사위들 다칠까봐!!”
“어..어머니가 여기 계시다고...?”
“그래요!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면 작은 어머님은 영영 이 가문에 얽히게 되는 거에요.
작은 어머님은 마음 편하게 사신 줄 아세요?
남의 남자 꿰차고 살면서, 본처 옆에서 어떤 여자가 마음 편하겠습니까??
아들 귀한 집에 소실로 들어와서 딸만 내리 셋 낳고 어떤 심정으로 살았는지 아세요?
이 집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으시댑니다!”
아.. 나 또 눈물 나려고 해.
그 때도 저 얘기 듣고 눈물 터져서 아주 혼났는데.
우리 할머니들.. 행복해 보이셨는데...
두 분이 도란도란 자매처럼 늙어가시는 모습이 너무 이쁘고 귀여웠는데.
인간극장에서 주인공으로 찍자는 섭외도 들어왔었는데...
두 분 다.. 마음 한 편은... 아프셨구나...
할아버지는... 왜 그러셨을까... 왜...
두 여자를 모두 힘들게 하셨을까...
아버지가 허옇게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자 스님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안되겠네요. 갑시다.
내, 지금 큰어머니 상태가 어떤지 가서 직접 봐야겠소.”
하며 밖으로 나가셨어.
우리도 우르르.. 따라나갔고.
그때 시간이 새벽 3~4 시쯤??
잠깐 이야기를 나눈 거 같은데 어느새 그렇더라고.
손님들도 아직 많고 집안 어르신들도 어안이 벙벙해 하셨지만 아웃오브 안중.
스님은 막내 오빠 차에 타고 나머지 가족들도 각각 차에 나눠 타고 줄줄이 선산으로 향했어.
발인을 아침 9시에 하기로 해서 채 다섯시간도 안 남은 때였지
거기서 무려 한시간을 차로 달렸엌ㅋㅋㅋ아놬ㅋㅋㅋ깡촌ㅋㅋㅋㅋ
선산에 도착하니 희부염하게 날이 밝고 있었어.
산 입구에는 사람들이 사유지에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문이 있는데, 그 앞에서 모였어.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고 우리도 줄줄이 내리고 막내 오빠는 좀 늦게 도착했는데,
스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산을 향해 깊~이 배꼽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드는데..
그런데 정말, 큰할머니와 할아버지 묘가 있는 쪽을 정확히 올려다보시는 거야.
“저기 큰 어머니가 계시네요.”
아버지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셨어.
짐작가쟈나. 우리 아부지는, 큰할머니에게 참 애틋한 아들이었다고.
“어..어머니가?? 어떠신데요??”
“옥색 치마 저고리를 입으셨고 머리숱이 별로 없는데 쪽을 찌고 계시네요.
눈이 작은데 얼굴에 살이 없어서 눈꺼풀이 많이 쳐졌네요.
광대뼈가 높고, 입은 작고.”
“어..어머니!”
와...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어찌 저리 묘사해.
아버지는 무릎을 털썩 꿇으셨어.
“지금 어머님은 화가 많이 나 계세요. 여기서 더 못올라가요”
“화가...요?”
“어머님은 지금 그냥 영가가 아니라 산신님이세요.
그런데 산신님이 화가 많이 나 있으니 이 산에 동물이며 식물들도 다 겁먹고 있어요.
지금 올라가면 위험할 거에요.”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는 목 놓아 울기 시작하셨어. 애써 부정하려고 했던 스님의 이야기들이 그제야 가슴에 와서 박히셨던 거야.
“어머니! 그렇게 힘드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들이 몰라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엄마도 고모들도 고모부들도... 오빠들도 나도... 결국 네 살짜리 애기를 들쳐업고 따라온 큰올케도 엉엉 울었어.
스님은 아버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어.
“일단 돌아갑시다. 장주가 이러면 어머니 마음이 더 아픕니다.
그 화가 아버님하고 작은 어머님에게 갈 겁니다.
일단 돌아갔다가 어머니 뜻대로 하고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시네요.”
오빠들이 아부지를 부축하고.. 나랑 올케는 엄마를 부축하고...
돌아서려는데 스님이 다시 산을 향해 합장을 깊게 하시고 반쯤 돌아서서 옆에 누군가에게 또 합장을 길게 하셨어.
물론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지.
아버지가 혹시나 싶어
“스님, 지금 누구에게 인사하십니까” 하니
“예. 한 열살 정도 되는 어린 소녀 영가가 어머님하고 여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말을 전해주고 있거든요.
아마 장주님의 동기신 거 같은데...
장주님을 무척 애틋하게 여기시네요.”
아버지는 뜨악한 표정이셨어.
“동기간이요? 저는 외동입니다만.
작은 어머니 쪽으로 여동생이 셋 있지만 같은 태의 동기는 없습니다.”
스님은 조금 당황한 낯빛이었어.
“그렇습니까? 장주님이 모르시는 동기가 있나 봅니다.
나중에 확인하시지요.”
헛. 뭐지? 이 기분은ㅋㅋㅋㅋㅋ 스님 돌팔잌ㅋㅋㅋ 딱 들켰엌ㅋㅋㅋㅋ
갑자기 영화가 끝나고 엔딩스크롤이 올라가면서 극장 안에 불이 켜진 기분이었어.
그동안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진 것 같달까?
꿈을 꾸다가 깬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어.
아버지는 고모부들과 함께 ‘예정대로 발인을 할까 그래도 스님 말을 한번 믿어볼까
아니 돌팔인데 저거 정신 빠진 아들놈이 술술 정보를 다 흘린 거 같은데 아니 그래도...’를 무한루프를 타셨지만,
발인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어.
그런데 판 1에서 할아버지가 묘자리 맘대로 쓰겠다고 땡깡하셨을 때,
우리 아부지를 위로했던 집안 어르신 한 분이 있다고 했잖아??
... 기억 안난다고?... 그렇지 뭐.
판이 좀 지루해서 그래. 어흑. 난 팔만 빠질 뿐이고. 어흑.
근데 그 분이 아부지한테 오셔서 ‘슬슬 발인 준비를 하자꾸나’ 등의 말씀을 하시려는데 아부지가 갑자기 물으신거야
“아재요. 혹시 나한테 나 모르는 동기가 있습니까?”
어르신은 흠칫 놀라셨어.
“응? 자네가 동기가 어딨나.
대종손에 자네 하나라 우리가 얼마나 근심걱정 했는데.”
“그렇지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아버지가 돌아서는데, 어르신이 혼잣말처럼 말씀하셨어.
“그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 말하는가?”
알고보니 아버지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셨는데,
할머니가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는 바람에 뱃속에서 잘못돼서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대.
그것도.. 큰할머니에겐 너무나 한이었던 거야.
실은... 잘못돼서 태어났는데..
할머니의 시할머니.. 나에겐 고조할머니가... 태어난 지 하루된 아기를 엎어 뉘워서 재웠대...
무슨 말인지 알거야.. 응.. 아... 할머니...
그리하야! 일은 급선회를 해서 발인은 전격 취소!
작은 할머니는 근처에 있는 화장터로 모셔서 화장을 했어.
이런 법도는 없다! 며 집안 어르신들의 토할 것 같은 반대가 있었지만 아부지는 밀어붙이셨어.
우리 아부지, 한다면 했던 남자의 아들. ㅋㅋㅋㅋ
그리고 어느 교회의 수목장에 유골을 뿌렸어.
할머니가 그 걸 원하셨다고 스님이 전해주셨어.
[에필로그]
그리하야..
작은 할머니 상을 치루고,
우리 가족은 스님을 찾아뵙고사례를 하려고 했는데
스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셨어
당신은 더 이상 무당이 아니니 복채는 못 받고,
우리 집은 불교가 아니고 기독교이니 시주를 할 필요도 없다 하셨어
그리고 상 후에, 작은 할머니가 스님에게 왔다 가셨는데
정말 평온하고 맑은 얼굴로
고맙다고, 덕분에 다시 달로 돌아간다고
자식들에게 잘 있으라고 전해달라고 하셨대
읭? 달?? MOON?? 하늘에 떠 있는 저거??
스님 말씀에 의하면
작은 할머니는 달나라 선녀가 죄를 짓고 지상에 잠시 내려 온 건데
사람이 그걸 낚아채서 머무르는 바람에 더 큰 죄를 짓게 된 거래
그러니 더 이상 인간의 인연으로 지상에 묶이지 않고
원래 있던 데로 돌아가시도록 해드린 거래
무슨 얘기 안 떠올라? 선녀와 나무꾼ㅋㅋㅋㅋㅋㅋㅋㅋ
마침 낳은 자식도 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고모들, 선녀의 딸 ㅋㅋㅋㅋㅋㅋㅋㅋ
무당 스님, 결론 너무 무리하셨어 전래동화가 뭐야.
엄마랑 우리 남매들은 빵 터져서 쿡쿡거리고 있는데
아부지와 고모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벙... 한 표정을 지으시는 거야.
큰 고모가 조심스럽게 아부지에게 물었어.
"오빠, 엄마가
토끼 해年, 토끼 달月, 토끼 날日에 태어나셨다고 하잖았어요?"
"그러셨지. "
"근데토끼 달月, 토끼 날日, 토끼 시時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오빠가 신기하다고..."
"그랬지..." >
스님은 그냥 조용히 웃고만 계셨어.
꺅! 12간지 동물 알지? 자축인묘. 하는 거
싱크빅 돋게 함 외워볼까?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이 중에 달하고 관련있는 전설 가진 건 토끼 밖에 없을거야. 아마
우리 작은 할머니, 달토끼였던 걸까?
그래서 그렇게 작고 귀여웠던 걸까??
알아 알아 스님 연락처 급 궁금하지.
미안하지만 지금은 몰라.
작은 할머니 상을 치루고 며칠 뒤에
스님이 막내 오빠를 부르시더니
인연이 여기까지이니 이제 만나지 말자고 하셨대
오빠가 너무 서운해서 스님 왜 이러세요. 하니
그냥 웃으시는데,
왠지 너무 지쳐 보이시더래
내가 나중에 어느 도 닦는 분에게 이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도인 말씀이,
그 스님이 출가하고 굿을 안했다는 건 신을 봉인했다는 건데
그 정도 사건이면 봉인해 두었던 신을 다시 꺼내야 했을 거라고,
꽤 영험한 걸 보면 신 중에서도 꽤 높은 신이었을 거라고,
봉인되어 있다가 다시 나왔으니 얼마나 날뛰고 화를 냈겠냐고,
아마 내상을 꽤 깊게 입었을 거라고 그러드라고
스.스님 털썩
그런데 나중에 고모들 중에 한 분이
집에 좀 퍽퍽한 일이 있어서 그 스님을 찾아 가셨었거든?
이미 그 암자에서 사라지셨더래
그 후론 진짜 소식 한 자 들은 적 없으니
부디 ‘스님 연락처 알려주세요’ 라는 댓글은 달지 말아줘
나 맘이 너무 무거워 으흑
자~! 우리 할머니들에 대한
조금은 신기한 이야기는 이게 다야
애시당초 엽호판 레젼드 님들의 글을 재미지게 읽다가
아 맞다 나도 하나 있는데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했던 거라,
많지 않지만 ‘너네 집 이상함’ 이라는 의미의 댓글을 보았을 때
나, 조금 기분 상했다? ㅋㅋㅋ미안ㅋㅋㅋㅋ 8판이 지나도록 곱씹고 있넼ㅋㅋㅋㅋ뒤 끝으로 지구 감겄어ㅋㅋㅋㅋ
그런데 이번 추석 때 가족이 모여서
고스톱도 치고 전도 부쳐 먹고 그러면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서로 기억하고 있던 일들을 꺼내서
하하호호 이야기 하다 보니
참 좋드라고
무뚝뚝했지만 속정 깊었던 우리 할아버지
순박하고 다정했던 큰 할머니
너무 귀엽고 애교많던 작은 할머니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그나마 기억해 줄 사람도 오빠들과 나까지겠지
내 조카만 해도 자기에게 증조 할머니가 두 분이셨다는 거 몰라 ㅋㅋㅋ
그래서 조금 더 쓰고 싶어졌어
어느 깊은 산골의 무뚝뚝한 농부와 그의 두 아내
남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삶의 방식이지만
나름 열심히 살고 사랑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세 분이 너무너무나 사랑해 주셨던
막내 손녀가 짧게나마 정리해서
여러분께 들려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한 할아버지는
다른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셨었는데,
그때 하숙집 주인 아줌마가 바로 우리 작은 할머니였대
또 얘기 하나 떠오르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닠ㅋㅋㅋㅋㅋ
근데, 옥희 어머니와 달리,
하숙집 아줌마에게는.. 남편이 있었대
울 할아버지 나빠? 맞아 나쁘지..
그런데 말야, 하숙집 아줌마는 매 맞는 아내였대
남편이 술만 마시면 이유없이 때리곤 했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 말린 적도 있고,
병원에도 데려가고, 약도 사다주고 그랬대
그때까지만 해도 연민이었겠지
어느 날.. 작은 할머니가 남편에게 정말 죽도록 맞았나봐
피 닦은 수건처럼 되어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할머니를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할아버지가 발견,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대
그런데 의사가 보더니,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를 찌른 거 같다고,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그러더래
그때나 지금이나 수술하려면 보호자가 필요하잖아?
그래서 할아버지는
‘내 아내’ 라고, ‘무조건 살려내라’고
아니면 병원에 불 싸질러 버리겠다고 했대
의사가 겁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급히 수술을 했고, 다행히 할머니는 살아나셨대
나중에 할아버지가 남편이 아닌 걸 알고
의사가 엄청 화를 내면서 할아버지를 병원에 출입금지 시켰대 ㅋㅋㅋㅋ
진짜 남편은 낫 들고 병원 앞에서
‘이노무 여편, 퇴원만 해 바라 그 놈하고 뭔 관계고?’ 하고 깽판을 쳐서
남편도 병원 출입금지 ㅋㅋㅋㅋ
할아버지는 그 남편이 오해하고 화내는 바람에 하숙집에서 쫓겨났는데
좋은 일하고 욕먹는 현실이 너무 억울했지만,
곧 욕먹을 만 하다는 걸 깨달았대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대
아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구나
그래서 엄청 슬펐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니까
할아버지는 다 잊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사업도 정리하고 짐을 꾸렸대
그런데 두둥!
다음날 아침, 6.25 전쟁이 터진거야!
다른 사람들은 전쟁 났다고 난리 난리치는데
할아버지는 곧장 할머니에게 갔대
마침 불안해하고 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자
자신을 ‘집’에 데려다 달라고 그랬대
그래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업고.....
‘고향집’으로 내려와 버렸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아알아 우리 할아버지 나빠 그 악플 넣어둬.
사실 처음에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데리고 도망갈 생각은 아니었대
근데 하숙집이 가까워질수록
‘지금 집으로 보내면 이 여자는 죽는다’ 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고향집 앞이었고,
눈 앞엔 조부모님과 부모님과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고 있더라고,
나중에 어느 술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친구 분에게 얘기하는 걸,
작은 할머니가 엿듣고 그날 밤 큰 할머니에게 얘기한 걸,
당시 꼬꼬마였던 우리 아부지가 자는 척 하고서 다 들은 걸,
용케 안 까먹고 계시다가 나중에 막내딸에게 얘기해 주셨지
추석 때 전과 과일을 냠냠 먹으면서
가족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까
오빠들이 생전 첨 듣는 얘기인양 엄청 오그리토그리 해대서 당황했어
아부지.. 나한테만 해주셨던 거야?
엄마는 대강은 알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원래는 그때 작은 어무니가 죽을 운명이었나 보네
그때 달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아버님 때문에 못 가셨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시는 바람에
우리는 또 잠시 소름타임을 가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