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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네 아빠 부자야. 완전 갑부라고.” 칼리가 입안에 점심밥을 가득 문 채 말했다. 밥보단 말을 질겅이면서. “그럼 좋을 거 같지?” 칼리는 눈알을 굴렸다.
“근데 진짜 수상한 사람이야. 엄마아빠가 걔네 아빠한테 가까이 가지 말고 다른 애들한테도 그렇게 전해주라고 했어.” 칼리의 머리꽁지가 열심히 흔들렸다. 새로운 애한테 이 사실을 말해주는 게 신난 듯 했다. “이제 좀 알겠지?”칼리가 말했다. 나는 점심으로 나온 햄버거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알겠네.”메아리처럼 따라 말했다.
제이슨을 집에 초대하자 제이슨은 내가 농담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농담이 아니라고 확신시켜 주었지만, 걘 우리 집 초인중을 누르고 나서도 자기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제이슨 앞에 라자냐 한 그릇을 놓아 주었더니 제이슨은 한참 굶던 애처럼 그걸 먹어치웠다.
“고마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은데, 저번에도 이런 일이 생겼다가…” 제이슨의 목소리가 막혀왔고, 귀는 빨개졌다. “다음 주엔 우리집에 놀러 와. 우리집 TV 엄청 커.”
제이슨네 집 TV는 벽 한 면을 전부 덮고 있었다. 집이 너무 크다 보니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다. 층마다 바닥은 대리석이었고 벽에는 사자와 코끼리의 머리가 박제된 채 걸려 있었다. 제이슨의 아빠는 야생동물 수집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고 집안은 무슨 박물관 같았다.
“제일 멋진 건,” 제이슨이 행복하게 말했다. “지하실에 있어.”
수족관이었다. 그냥 수족관이 아니라, 통로들이 끝없이 꼬여 있고 네온 등 아래서 반짝이는 물고기들로 가득한 수조들이 있었다. 내가 전혀 본 적 없는 것들도 있었고, 상어 수조 위쪽을 바라보자 내 두 배만한 그림자가 물 너머로 흐릿하게 보여서 조금 뒷걸음질쳐질 정도였다.
나는 수족관을 구경하러 가는 것을 즐기게 되었지만, 제이슨네 아빠가 있을 때는 가지 않았다. 그분은 행동하는 게 뭔가 이상했고, 제이슨은 아빠가 근처에 있으면 쫄아 있었다.
어느 날 제이슨이 수족관에 특별한 것이 생겼다고 했다. 내가 전에는 못 본 새로운 것. 제이슨은 너무 신나서 몸이 떨리고 있었다.
“학교 끝나고 보러 와. 장담하는데 놓치고 싶지 않을걸.” 나는 긴장한 채 책상 밑에서 다리를 떨며 하루를 보냈다. 들판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데 제이슨이랑 그 얘기를 할수록 뭔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제이슨은 손바닥을 핥고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걔네 아빠가 가끔씩 뜬금없이 하는 습관이었다.
“아빠가 그러는데 엄청 위험한 거래. 절대로 만지면 안 된대. 사실 수족관에 내려가지도 말라고 했어.” 제이슨의 목소리가 갑자기 음모를 꾸미는 듯한 톤으로 바뀌었고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얘가 뭔 짓을 꾸미는진 몰라도 같이 하고 싶지도 않고, 걔네 아빠를 화나게 하는 건 더 싫었다.
“나 그냥 갈까 봐.” 나는 상황을 웃어넘기려 노력했다. “엄마아빠가 찾을 거 같아.”
“5분만, 딱 5분만 있으면 돼. 너 살면서 그런 여자애는 절대 못 볼 거야.”순간 속으로 혼자 치고 있던 방어막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여자애라고?” 나는 멈춰섰다.
“여자애처럼 생겼거든. 발가벗었어.”제이슨은 마지막 문장을 속삭이듯 얘기했고,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처럼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방은 내가 가보지 못한 뒤쪽에 있었다. 입을 커다랗게 벌린 아구들이 있는 복도를 지나고, 수조의 조명 빛 사이를 날아다니는 엔젤피시들을 지나가야 했다.
수조는 어두웠다. 나는 차가운 철물 구조의 방 속에서 덜덜 떨었고 제이슨은 불을 켜는 레버를 당기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어두운 물 속으로 내 시야도 점점 깊어져 갔고 척추를 타고 소름이 끼쳤다.
“됐다!” 제이슨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레버를 당겨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수조 밑으로부터 새하얗고 작은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색빛 물 속에서 떠다니는 여자애를 보자마자 내 심장은 멈추어 버렸다. 빨간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그녀의 얼굴 주변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너무 길어서 수조 전체를 소용돌이치듯 채웠다.
“저…저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제이슨이 계단 위로 날 끌어올렸고 나는 충격에 빠져서 순순히 따라갔다. 그러다가 탁한 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수조 위까지 도착했다. 바닥에서는 끼익대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애는 떠올라서 파란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어야. 아빠가 그러는데 내가 쟤 가져도 된대. 16살 생일이 되면 말이야.” 제이슨이 소심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기대돼.” 인어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였다. 나무가 삐걱대고 물이 철썩이는 소리들이 들렸다. 나는 좀더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몸에 여기저기 난 찢어진 상처들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아빠가 그러는데 쟤가 좋아한대.”
“제이슨” 나는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건 옳지 않아.”
순간 인어의 두 눈이 확 떠졌고, 마치 두 개의 달처럼 빛났다. 제이슨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갑자기 내 팔다리가 잠에 빠진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수조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물 위에서 무릎을 꿇자 젖은 바닥이 내 청바지의 무릎 부분을 적셔 왔다.
인어의 얼굴은 수면 위로 점점 더 가까워졌고, 제이슨의 비명 소리는 치직대는 백색소음마냥 흐려져 갔다. 그녀의 작은 손끝이 수면을 뚫고 올라오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공중으로 날아,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수면을 찢고 들어갈 때까지 그저 밑으로, 밑으로 덤벼들었다.
인어의 머리카락이 나를 감쌌다. 순간 수압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공기가 없으니 폐도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물 밖에서 봤던 거랑은 전혀 다른, 썩어들어간 얼굴 하나가 내 얼굴 앞에 자리잡았다. 숨막히는 물 속에서 비명을 내뱉자 나의 마지막 숨결이 코 위로 방울지며 도망쳤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졌다. 몇 시간이고 배가 아프다가 토를 해서 게워내는 것처럼, 나를 채우고 있던 공포가 텅 비워졌다. 인어의 얼굴은 더 이상 죽은 듯한 모습이 아니었고, 이제는 수많은 여자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섯 명, 열 명, 아니 천 명까지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들이 내 앞에서 둥둥 떠다녔고, 두려워해야 하는 건 알았지만 나에게 남은 건 뼈저리게 아픈 슬픔 뿐이었다.
그녀는 짐승처럼 가두어져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거라곤 이제 노예로 사는 삶 뿐이었다. 그녀의 자매들이 심연 속에서 그녀를 향해 소리쳤고 나는 그들의 바쁘게 움직이는 입을 보았다. 전부 볼 수 있었다. 제이슨의 아빠가 기계로 인어를 집어 수조로 넣으면서 그녀의 살은 찢어졌고, 목에 박힌 마취총 바늘은 그녀의 뼛속부터 체력을 고갈시켰다.
몇몇 장면에서는 제이슨 아빠의 친구들도 보였고, 술냄새는 무슨 화학약품 수준이었지만 물은 한 방울도 없어서 그녀는 질식하며 숨을 허덕였다.
점점 불편해져서 나는 물 속에서 힘겹게 팔다리를 움직이며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저들의 편이 아니야. 바다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바다에게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다.
어두운 소금물 속에서 내 입 밖으로 나오는 거라곤 은색 거품들 뿐이었다. 아까 여자애 하나가 물 속에서 힘없이 갇혀서 남자애 두 명이 자길 쳐다보는 것도 막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수치심과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다.나는 간절하게 손을 뻗었고 무언가가 잡혔다. 그녀의 머리카락. 붉은색의 그것은 내 손목에 감겨왔지만 나를 옭아매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내 손목을 잡은 채 차갑고 딱딱한 유리에 손이 닿을 때까지 이끌어 주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우리는 거울에 비친 우리를 보았다. 무한한 별빛 물결 속에 떠 있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갑자기 그녀의 손이 내 손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그것은 거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손가락 하나가 수조의 유리에 닿았을 뿐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미세한 금이 가는 것이 눈 앞에 보였다. 그 모든 이들의 손이 느껴졌다. 내 손을 잡은 천 개의 손과 함께 나는 눈을 감고 유리를 다시 한 번 두드렸다.
우리는 쏟아져내렸다. 몸이 거꾸로 뒤집어지고, 세상도 거꾸로 뒤집어졌다. 기쁨에 젖어 세상이 떠나가라 지르던 그녀의 비명, 수조의 유리조각이 내 다리에 박힐 때 고통에 눌려 내지른 나의 비명.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라져 가다가 결국 침묵만이 남게 되었다.
뒤돌아보자 제이슨이 보였다. 얼굴은 눈물 때문에 빨개지고 퉁퉁 부어 있었다. 우리는 다시 수족관에 혼자 남겨졌고, 그곳에는 수조의 잔해에서 흘러내리는 물밖에 없었다. 인어는 사라져 있었다. 우린 한동안 조용히 앉아, 우리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생각했다.
사흘 후, 제이슨의 아빠가 실종되었다. 그는 그 동네에서는 꽤 잘 알려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실종을 조사하는 경찰들은 그가 실종되었다는 것이 놀랍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제이슨이 말하길 경찰들은 이제서야 실종이 된 게 신기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와 그 친구들 무리는 – 본 적이 없음에도 그들의 사진들이 너무 익숙했다 – 결국 시신이 토막난 채 조금씩 발견되었다.
그날 밤 내 방 베개 밑에는 어두운 색의 돌이 숨겨져 있었고, 나는 짠 소금내를 맡으며 잠에서 깼다.
가끔씩 내가 그 여자애와 함께 물 속에 잠겼을 때 보았던 것들, 그리고 그 끔찍하고 탁한 물 속에서 그녀가 내게 보여준 장면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 인어, 너무 친절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