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은 괜찮겠지만 여기서 더 머물거나 자면 큰일 날 것 같다는 걸 느꼈음. 이렇게만 얘기하면 걍 근거없이 개소리하는 거 겠지만 교회에 이런 경험담들이 자주 나오는 이유를 내 생각이지만 얘기해보자면 교회들은 보통 터가 안좋음. 물론 터도 좋고 건물도 반지르르한 교회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교회는 땅값과 건물 값 때문인지 터도 안좋고 음산하고 교회 세운지 좀 되서 건물까지 낡으면 그 땅의 기 자체가 음기로 가득차더라. 근데 이게 낮에는 별 문제 안돼 아침하고 낮에는 밝아서 음기가 완화되고 교인들이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에 괜찮음. 근데 밤만 되면 음기로 가득차서 온갖 영적 존재들이 모이는 것 같음 밤에 십자가 빛나고 그외의 어둡고 습하고 음기로 가득찼는데 어떤 영적 존재들이 안좋아하겠나. 이렇게 말하면..
이 두 오라버니들은 늘 그랬지만 그날도 학교 뒷문쪽 담 넘고 산 넘어 한두잔 걸치실려고 마실을 나갔답니다. 뒷문쪽 담을 넘으면 바로 산인데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조금만 넘어서 산아래로 내려오면 아파트와 도로가 바로 나옵니다. 그렇게 마실을 나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려고 산을 오르던중 동시에 산중턱을 쳐다보게 되었답니다. 무언가 서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산중턱은 바로 달빛아래였고 올라왔던 길을 다시내려가면 바로 아파트와 도로이기때문에 그리 어둡지 않았답니다. 그 여자의 행색은 아래위로 알록달록한 색동 한복을 입고 머리는 단발 머리를 하고 있었답니다. 나이는 서른대여섯? 정도의 나이였고 좀 반반한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술을 한두잔 걸쳤지만 달빛아..
매일매일 부모님께 투정이나 부리며 도시생활이 뭔지모르는 촌뜨기들을 무시하며 나름 고독하게 지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불과 2주일도 못되어 필통부터 범상치않던 저에게 동갑부터 동생형누나 할것없이 쏟아지는 관심에 금세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었고 그이후부터는 매일매일이 모험같던 시골생활이었습니다. 촌마을이다보니 전체마을주민이 몇 가구 안 되는 작은동네이어서 동네에는 포장된 도로같은 거는 찾아볼수도 없었고 우리집 일층이 옆 집의 이층높이가 될 정도로 오르막길 경사도 제멋대로인 촌동네였지만 시골인심하나는 말그대로 끝내주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친구들 이름이며 동네어르신 별명, 이름들이 가물가물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 당시의 추억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뭐니뭐니 해도 제일 기억에 남..
여름은 이 마을에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수는 적지만) 자유를 주는 계절이야. 그 아이들은 여름엔 아이스크림을 열정적으로 먹어 대고 이웃의 공원에 놀러 가곤 하지. 그리고 이 마을의 겨울은 피부가 벗겨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추운 편이야. 매일매일이 전날과 같고, 거의 이상적인 생활 양식의 한 장면과도 같지. 이 마을의 인구는 절대 늘지 않았어. 이방인들이 알 수 없는 장소에 위치해서 일까? 뭐 그게 딱히 예외적인 이유는 아니었지. 그냥, 이상하게도 - 어떤 이상한 이유로 늘지 않았던 것 같아. 이 마을은 그들이 오히려 고립되는 걸 선택했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다른 외곽 지역을 위험에 빠뜨릴까봐 그랬다는 느낌이었어. 음. 말이 되는군. 어쨌든,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 거의 지배 받지 않았어. 여기는 ..